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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2.02.17 곧 없어지겠구나. 이 공간. 1
  2. 2012.02.16 필요의 기준
  3. 2012.02.15 읽기 보다 쓰기를
  4. 2012.02.10 정신을 못차리겠다
  5. 2012.02.08 그의 도전을 보며
  6. 2012.01.14 301일째.
  7. 2010.02.01 어? 이런 욕망이?
  8. 2010.02.01 가난의 또 다른 의미
  9. 2010.01.22 앓으면서 1
  10. 2010.01.13 Traffick - 제3장 읽는 중
ㅎ 선생님이 연구실 문을 퍼뜩 열고 들어서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가셨다. 

박사가 여기서 뭐하냐. 아직 박사 아니었냐. 
ㅂㅎㅂ가 이번에 졸업을 하느냐.
교직 과목 수업에 대한 인기가 좋다. 비결이 뭐냐.
이 공간이 옆 방과 사이에 간이 벽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몰랐다.
퇴임 선생님들의 자료가 여기 있지 않았었냐.
이 박스들은 무엇이냐.
단과대 도서관에 자리를 마련해야 되겠구나. 등등.

여러 이야기를 하셨지만 일전에 흘러나왔던 공간 정리의 맥락과 연결시키고, 중요 이야기를 추려 들으면 핵심이 보인다.

"옆 방과 사이에 놓인 간이 벽을 허물고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쓰고 싶다." 

조만간 자리 비켜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화 되기 전까진 아무 짓도 안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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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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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의 기준

2012 서울 2012. 2. 16. 15:56

자동차가 내게 필요한가 아닌가 고민을 부쩍 하고 있다.

돈이 충분치 않지만 자동차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세게 들어서다.

기준은 '필요'인데, 필요의 기준을 충족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어떤 점에서는 그렇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또 어떨 때는 그렇고, 어떨 때는 그렇지 않다.

때에 따라 바뀌고, 공간에 따라 바뀌고, 상황에 따라 바뀌고, 스쳐가는 한 생각에도 바뀐다.

필요에 따라 배분한다던 사회주의 하기가 참 어려웠겠다 싶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필요의 기준을 합의하고 공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데 어느 하나의 기준을 들이대니 어떤 사람들은 만족해도 또 어떤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을 것 같다.

자발적으로 비교적 낮은 기준을 자신에게 들이대는 높은 수준의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또 다른 이름으로 실험되어도 다시금 실패하지 않을까 싶다.

나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공허함과 열패감에 휩싸이는 때가 많다면, 돌아볼 일이다. 

필요 이상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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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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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많은 부분을 무엇인가를 읽는데 할애해 왔다.
웹 서핑을 하는 것도 그렇고, SNS에서 만나는 짧은 글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고,
지금은 보지 않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길을 가다 현수막이나 포스터의 내용을 보는 것도 그렇다.
생산과 소비의 이분법을 들이대자면 나는 내 주변의 많은 텍스트들을 그저 소비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논문이라는 긴 글, 혹은 짧은 글의 묶음을 편집하는 작업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습성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무엇을 읽기 보다는 쓰는 형의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다.

읽기보다는 쓰기를!
그에 앞서, 읽었다면 쓰기를!
그에 앞서, 읽었다면 생각을!

점심 먹으러 다녀오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기자만큼도 안쓰고 있지 않은가!  

ㅋㅋ '쓰기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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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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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그런지, 정신을 잘 못차리겠다. 

공부에 마음이 안 잡힌다.

이런 저런 생각에 심란할 때가 많다.

뭔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눈이 자주 뜨거워진다. 건강을 돌보지 못했나. 

눈을 번쩍 크게 뜨고 정신 차리고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해 보자.

그리고, 일의 결과는 달게 받으면 될 일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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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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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거부 같이 하자고 웃으며 말하던 친구.

몇몇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운동의 새 길을 찾는 구도의 길을 100일간 떠났던 그. 

병역거부의 대가를 긴 시간 옥에서 치르고 난 후에도 군대보다 더 힘든 봉사 활동을 마다하지 않아야 

병역 거부의 진심을 알릴 수 있을거라며 인도의 불가촉 천민 마을로 떠났던 이.

어느 날 돌아 와서도 우리 대학 시절의 푸른 꿈을 잊지 않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때로는 단식을, 때로는 도보행진을 이어가며

이런 저런 시도와 실천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그가 또 한 번의 결단을 감행했다. 물론 혼자는 아니지만, 그 어깨에 느껴졌을 무게를 쉬 짐작할 수 있다.

"잃을 게 없다. 너무 재밌다."

 이 몇 마디가 그의 요즘 마음을 보여 준다. 

 진중하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지한 그의 모습에 내 마음이 새로워진다. 

화이팅! 오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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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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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일째.

2012 서울 2012. 1. 14. 11:29
일곱번째 천일의 301일째 날. 
100일간의 정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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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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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없던 욕망이 외국에서는 일어난다.

안 가본 곳 가보고 싶고, 안 먹어 본 것 먹어보고 싶다. 저기 앉아 있는 저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서울에서는 없던 욕망이다.
서울에서는,
어디 맛있는 게 있다고 해도, 어디가 좋다고 해도, 어디 가면 재밌는게 있다고 해도 그저 그랬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 그렇다.

아마도,
그 맛에 대해서, 그 장소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이벤트에 대해서,
가설적인 지식이라도 전무해서 그런 것 같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호기심일까?
무지를 탈피하려는 욕망일까?
도대체 뭐지, 이런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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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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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또 다른 의미 - 비난.
비난의 또 다른 의미 - 경멸, 꾸중, 회피, 외면

가난은, 그저 돈이 없고, 허름한 의식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로, 자본주의에서는, 경멸이나 꾸중, 회피, 외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삶을 살겠다는 것은,
그저 적게 입고, 적게 먹고, 적게 자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비난도 감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 동안 나와 친했던 사람들이 멀리 떠나가게 되는 것,
가족들의 외면이나 친구들의 경멸어린 눈빛,
상당한 정도의 고립감, 거기서 파생되는 위기 의식까지도 포함.

자발적 가난이라는 인생관은 따라서,
죽을 때까지의 외로움과 고립감과,
결국 내가 틀린 것인가 하는 때때로의 회의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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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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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으면서

토론토 일기 2010. 1. 22. 11:11
신종플루로 추정되는 강력한 바이러스에 화요일부터 오늘 목요일까지 3일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화요일은 아침부터 몸이 아파질 것 같아서 아예 학교를 접고 집에 있었다. 종합감기약 먹고 낮잠도 한 소금 자고 책도 안보고 그러면서 나름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수요일 아침이 되니 왠걸 더 심해졌다. 전날 밤 먹었던 쌍화탕이니 한방 감기약이니 다 소용없었다.
그래도 견딜만 하길래 무리해서 학교에 갔다. 집에 있으나 학교에 가나 똑같이 아플테니 에라 가자 하는 마음이었다. 학교에 가서는 슈그렌스키 선생 발표하는 데도 갔다오고 도서관에서 꼬박 5시간 정도 앉아서 아티클을 읽었다. 눈이 빠지려고 해도 꾹 참고 또 읽고 또 읽었더니 저녁 6시 쯤 되서는 더 머리를 써서는 안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6시 30분에 바람을 만나기로 했던 터라 30분 동안은 도서관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속으로 관세음보살님아 이 고통 좀 덜어주시라 군시렁 거리며..

집에 밥도 없었고 해서 들어오는 길에 갈비탕 한 그릇을 사 먹고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정말로 다른 짓 하나도 않고 곧바로 씻고 누웠다. 얼굴과 머리로 뻗치는 열이 그 기세의 끝을 알수 없을 정도로 세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건 신종플루가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서 빨리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갈 생각만 하였다. 잠도 쉬 들지 않아 숨만 가쁘게 몰아 쉴 뿐이었다. 숨이 코로 들어왔다 나가는 것만도 코 속이 아파 끙끙 거렸다.
그렇게 저녁 8시 정도부터 누워 오늘 아침 8시까지 중간에 몇 번 깨기는 했지만, 죽 12시간을 내리 누워있었다.

어랏? 자고 일어나니 코 속도 꽤 뽀송뽀송 말라 있고, 열감도 훨씬 덜했다. '아, 나아가는구나.' 싶었다. 
기세를 몰아 아침 먹고 종합감기약 두 알 털어 넣고 또 잤다. 10시 정도 부터 자서 오후 1시 반에 일어났으니 또 세 시간 반을 잔 것이다. 일어나서 108배 하고 점심으로 샌드위치 하나 만들어 먹고 감기약 털어 넣고 인터넷 좀 하다가 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길래 컴퓨터 끄고 다시 누웠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편하게 누워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뒤에 일어나 바람 문 열어주고 저녁 먹고 지금이다. 지금 몸 상태는? 눈에 약간 열감이 있긴 하지만, 꽤 건강한 상태인 듯 하다.

어제 하루 학교에서, 그리고 집에 와서 꼬박 오늘까지 앓고 쉬어보니,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안좋으니 오늘 점심 먹고 잠깐 이메일 체크하는 동안에도 급속한 피로감이 느껴졌었다. 책 읽는 건 아예 엄두도 못냈었다. 돌아보니, 캐나다 와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긴장을 풀지 않고 기를 쓰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면 안된다고 생각했었고, 아니 '생각'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어리숙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상황을 살폈던 것 같고, 그러면서 또 겉으로는 그런 티를 안내려고 무지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기를 소진한 것이 작은 바이러스 일침에 무너져 버린 것 아닐까.

일주일에 하루는 다 놓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약속도 안잡고, 책도 안보고, 아니 약속을 잡을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지만, 해야된다는 생각없이, 시간 아낀다는 생각 없이, 아무 것도 안하면 낭비라는 생각 없이, 그냥 여기 이 곳에 나를 가만히 놓아 두어 보는 시간. 그런 휴식이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니 모든 날들을 그렇게 산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생기겠는가.

이것도 깨달음이라면, 몸 아프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것을, 다행히 이리 가벼이 넘어갈 감기 몸살로 이 깨달음을 얻었으니 참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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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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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수업에서는 아마도 5장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 토론을 하겠지만,
나는 2장까지 밖에 읽지 않았으므로 이어서 3장을 읽어보기로 했다.

3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Winning the Cold War: The Power of Organised Crime in the Global Economy

30페이지 분량 중에 이제 겨우 10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1.
오늘날의 이 괴물같은 세계화가 결국은 신생독립국의 '발전'에 대한 열망을 한 줄기로, 선진국들의 번영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또다른 한 줄기로 한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또 하나의 탁견(적어도 내게는!)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이 괴팍한 역사(냉전과 냉전의 종식)와 그 수많은 파급을 아무리 피하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사건들은 그 당시의 많은 은밀한 전투들의 연장이다. 그리고 흔히, 그 연장은 과거에 내려진 결정들의 예측 못한 결과들이다."

흠, 번역을 잘했나? 영어로는 이렇다.
"However much we try to avoid this awkward history and its many ripples around the world, the events of today are a continuation of the many stealthy battles of that time and, usually, that continuation is another unforeseen consequence of past decisions."

세계화를 자기 바깥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역사가 빚어낸 것으로 보는 시각과 동일한 종류의 인식아닌가. 우리는 여전히 역사 속에 있음을 말하는.


2.
또 하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관련된 부분이다. 저자는 조직 범죄가 확대되는 결정적 계기로 소비에트의 연방의 붕괴를 말하는데, 내가 읽은 부분까지는 아직 충분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내일이나 모레쯤 그 내용을 정리하게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읽은 부분에서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는데 큰 원인이 되었던 군비 경쟁에 대해 설득력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냉전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서구 나라들은 경제 운용에 있어서 케인즈주의 접근을 적용한다. 그런데 이는 다양한 형태의 '군사적 케인즈주의'를 포함한다. 즉, 군수산업의 확장을 고용창출과 소비진작의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 사용한 것이다. 냉전 시대 서구 나라들 입장에서 이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가진다. 즉, 군수산업의 확대는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지출이면서 동시에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견제의 효과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소비에트 연방에게 이는 서구 나라들 전체의 무장력에 대항하는 군비 지출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소련의 침몰이었다. 빚의 바다 속으로 침몰.

어떤가? 동구 사회주의 몰락을 세계 경제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사회주의체제 자체의 내적 모순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자체 운동이 가져온 나비 효과라고나 할까? 물론, 저자는 자본주의 진영이 펼친 은밀한 공작들에 대해서도, 본문에서 설명하지는 않지만, 역시 부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설명을 복합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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