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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망가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1.22 앓으면서 1

앓으면서

토론토 일기 2010. 1. 22. 11:11
신종플루로 추정되는 강력한 바이러스에 화요일부터 오늘 목요일까지 3일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화요일은 아침부터 몸이 아파질 것 같아서 아예 학교를 접고 집에 있었다. 종합감기약 먹고 낮잠도 한 소금 자고 책도 안보고 그러면서 나름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수요일 아침이 되니 왠걸 더 심해졌다. 전날 밤 먹었던 쌍화탕이니 한방 감기약이니 다 소용없었다.
그래도 견딜만 하길래 무리해서 학교에 갔다. 집에 있으나 학교에 가나 똑같이 아플테니 에라 가자 하는 마음이었다. 학교에 가서는 슈그렌스키 선생 발표하는 데도 갔다오고 도서관에서 꼬박 5시간 정도 앉아서 아티클을 읽었다. 눈이 빠지려고 해도 꾹 참고 또 읽고 또 읽었더니 저녁 6시 쯤 되서는 더 머리를 써서는 안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6시 30분에 바람을 만나기로 했던 터라 30분 동안은 도서관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속으로 관세음보살님아 이 고통 좀 덜어주시라 군시렁 거리며..

집에 밥도 없었고 해서 들어오는 길에 갈비탕 한 그릇을 사 먹고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정말로 다른 짓 하나도 않고 곧바로 씻고 누웠다. 얼굴과 머리로 뻗치는 열이 그 기세의 끝을 알수 없을 정도로 세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건 신종플루가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서 빨리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갈 생각만 하였다. 잠도 쉬 들지 않아 숨만 가쁘게 몰아 쉴 뿐이었다. 숨이 코로 들어왔다 나가는 것만도 코 속이 아파 끙끙 거렸다.
그렇게 저녁 8시 정도부터 누워 오늘 아침 8시까지 중간에 몇 번 깨기는 했지만, 죽 12시간을 내리 누워있었다.

어랏? 자고 일어나니 코 속도 꽤 뽀송뽀송 말라 있고, 열감도 훨씬 덜했다. '아, 나아가는구나.' 싶었다. 
기세를 몰아 아침 먹고 종합감기약 두 알 털어 넣고 또 잤다. 10시 정도 부터 자서 오후 1시 반에 일어났으니 또 세 시간 반을 잔 것이다. 일어나서 108배 하고 점심으로 샌드위치 하나 만들어 먹고 감기약 털어 넣고 인터넷 좀 하다가 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길래 컴퓨터 끄고 다시 누웠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편하게 누워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뒤에 일어나 바람 문 열어주고 저녁 먹고 지금이다. 지금 몸 상태는? 눈에 약간 열감이 있긴 하지만, 꽤 건강한 상태인 듯 하다.

어제 하루 학교에서, 그리고 집에 와서 꼬박 오늘까지 앓고 쉬어보니,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안좋으니 오늘 점심 먹고 잠깐 이메일 체크하는 동안에도 급속한 피로감이 느껴졌었다. 책 읽는 건 아예 엄두도 못냈었다. 돌아보니, 캐나다 와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긴장을 풀지 않고 기를 쓰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면 안된다고 생각했었고, 아니 '생각'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어리숙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상황을 살폈던 것 같고, 그러면서 또 겉으로는 그런 티를 안내려고 무지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기를 소진한 것이 작은 바이러스 일침에 무너져 버린 것 아닐까.

일주일에 하루는 다 놓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약속도 안잡고, 책도 안보고, 아니 약속을 잡을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지만, 해야된다는 생각없이, 시간 아낀다는 생각 없이, 아무 것도 안하면 낭비라는 생각 없이, 그냥 여기 이 곳에 나를 가만히 놓아 두어 보는 시간. 그런 휴식이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니 모든 날들을 그렇게 산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생기겠는가.

이것도 깨달음이라면, 몸 아프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것을, 다행히 이리 가벼이 넘어갈 감기 몸살로 이 깨달음을 얻었으니 참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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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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