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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다고 하여 시간나는대로 행사 포스터며 플랑카드들을 부착했었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그것들이 잘 붙어 있나를 살피게 되는데 엊그제 붙였던 것이 떨어졌거나 훼손되어 있으면 속이 상한다. 플랑카드 같은 것들은 처음에 부착할 때 제 아무리 단단히 묶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곤 하는데, 그런 것들이 눈에 띄면 띄는대로 가서 바투 매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고쳐 매는 나를 사람들이, 특별히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볼까봐 내가 주저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오늘은 느슨해져 있던 작은 플랑카드를 몇 시간 방치했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덜렁덜렁 대는 것이 보기 싫으니 청소하는 분들이 떼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 때문인지 오늘 저녁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사람들의 시선에 머뭇대다가 돈 만 원 이상은 족히 될 홍보물 하나를 낭비한 셈은 아닌지 약간은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도 생겼다. 

가방끈이 길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선의 위치도 함께 변해서 나중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아주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면서 지체 높으신 분이 되면 도저히 나설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져서 궁둥이 들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체면 차리느라 꼼짝 못하는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미리 걱정이 된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소박하고 가볍고 진실된 사람이 되어야지. 욕망에 솔직한 사람.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나인 걸, 어쩌냐 세상 사람들아. 그냥 봐 다오. 

내일은 날 훤할 때 플랑카드 몇 개 갖다 달아보자. 가볍게. 실실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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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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